100% 재택근무, 완전한 자율성. 제가 꿈꾸던 회사의 모습을 담아 설계한 우리의 내부 시스템은 놀랍도록 잘 돌아갔습니다. 팀원들은 회사의 목표와 목적을 깊이 이해했고, 서로를 신뢰하며 주도적으로 일했습니다. 불필요한 형식도, 눈치 보는 회의도 없었죠. 저는 우리가 만든 이 건강한 내부 문화에 만족했고,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통장 잔고는 제가 그린 장밋빛 시나리오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정작 외부에서 우리를 찾아주는 클라이언트나 프로젝트의 질은 우리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명백히 '영업'과 '수익 구조'에 있었고, 그건 온전히 리더인 저의 문제였습니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제 안의 ‘안일함’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우리는 기존 클라이언트들에게조차 우리가 약속했던 그 ‘다른 시각’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장 중요하고 날카로워야 할 우리만의 가치를 스스로 무디게 만들고 있었던 거죠.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찾는 것보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는 이들에게조차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럽고 아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냉혹한 현실. 막상 내 회사를 운영해보니 생각보다 돈이 훨씬 많이 들어갔습니다. 팀원들의 행복과 회사의 확장을 위해서는, 결국 회사가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 한 사람 한 사람의 매출 기여도가 중요했고, 클라이언트의 ‘객단가’가 중요했습니다. 이 지극히 당연한 비즈니스의 본질을 온전히 체감하기까지, 창업 후 7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바로 그 무렵, 제가 전략을 수정하고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는 클라이언트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혹은 14곳의 회사를 거치며 인연을 맺었던 아주 오래된 선배, 후배, 동료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제가 과거에 쌓아온 결과물과 일하는 방식을 기억하고, 기꺼이 자신들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믿고 맡겨주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반가움이나 고마움보다 '놀라움'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아주 잠깐 스쳐 갔을 뿐, 제 모든 생각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졌습니다. '이 기회를 어떻게 최고의 결과물로 만들 것인가?' 나를, 그리고 우리 팀의 가능성을 믿어준 사람들의 신뢰를, 과정과 결과로 증명해내야 한다는 강력한 책임감이 모든 감정을 압도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나를 살린 것은 결국 '과거의 나'였다는 것을. 지난 시간 동안 제가 쌓아온 관계와 신뢰라는 '인적 인프라'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과 미래를 계속해서 저에게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이 소중한 기회들을 통해, 우리는 이제서야 우리가 진짜 하고 싶었던, '다른 시각'을 담은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안다. 좋은 철학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철학을 비즈니스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하고,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는 파트너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것인가. 그것이 바로 토스트토스트의 새로운 '가치 제안'이자, 내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댓글
댓글 쓰기